Claude Code 화면을 띄워놓고 배포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1년차 클라이언트가 화면을 보다가 물었다. “API 연결하면 웹사이트 자체에서도 할 수 있나요? 네이버 블로그 처럼요?”

“그건 옛날 방식이죠.” 라고 대답했다.

내가 그런 대답을 할거라는 것을 몇 개월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25년 12월쯤 이었다. AI 세미나에 갔다가 강사가 러버블이라는 도구를 소개했다. 그 자리에서 처음 들었다. 강사가 자기 화면을 띄워놓고 몇 분 만에 한 페이지를 짜는 걸 보여줬다. 그 자리에서는 시연을 따라가는 데 정신이 팔려서, 그게 내 일과 어떻게 만나는지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았다.


세미나가 끝나고 돌아와서 한번 만져봤다. LLM에 랜딩페이지 기획을 입력하고 md 파일로 정리해서, 그 파일을 러버블에 업로드했다.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화면을 보고 있는데 페이지가 짜였다. 헤더가 자리를 잡고, 히어로 섹션이 올라오고, 그 아래로 기능 설명 블록들이 차례로 깔렸다. 신기했고, 당황했다.

나는 7년 동안 클라이언트들에게 워드프레스를 추천해왔다. 워드프레스로 사이트를 만들어야 콘텐츠를 직접 쌓을 수 있고, SEO 작업도 손에 잡힌다고. 그런데 LLM에 넣은 한 줄짜리 기획에서 랜딩페이지가 짜여 나오는 화면을 보니, 내가 7년 동안 믿고 있던 원칙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었다.


며칠 더 만져봤다. 그러다 한계가 보였다. 러버블 안에서는 콘텐츠를 차곡차곡 쌓아가기가 어려웠다. 글을 계속 올리고 카테고리로 묶고 검색에 노출되게 다듬어가는 작업이 손에 잘 안 잡혔다. 글 한 편을 올리는 동선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카테고리 구조를 만들어 글들을 묶어두는 자리도 보이지 않았다. SEO 항목들을 손보려 해도 원하는 만큼 들어가지지 않았다. 메타 태그를 페이지마다 다르게 설정하거나, URL 구조를 손에 맞게 다듬는 작업이 막혔다. 시스템이 닫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한 번 안심했다. 워드프레스를 대체할 도구는 아니구나. 7년 동안 해온 말을 거두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 이후로 또 기술은 빠르게 발달했고, 외국인 대상의 비스니스를 하는 클라이언트와 웹사이트를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커서와 Claude Code로 한번 만들었다.

기획서를 정리해서 넣고, 한 화면씩 작업을 시켰다. 디자인이 나왔다. 내가 머릿속에 그리던 자리와 어긋나지 않았다. 색상도, 간격도, 섹션의 흐름도 의도한 대로 자리잡았다. 워드프레스에서 테마를 깔고 플러그인을 붙이고 한 줄씩 CSS를 만지며 며칠 걸리던 작업이, 다른 호흡으로 진행됐다. 테마의 한계 안에서 타협하던 자리가 사라졌다. 기획서에 적은 그대로가 화면으로 옮겨졌다.

수정이 더 놀라웠다. 어느 자리의 무엇을 어떻게 바꿔달라고 말하면 그대로 됐다. 워드프레스에서는 같은 수정을 위해 테마 파일을 찾아 들어가고, child theme를 건드리고, 캐시를 비우고, 깨진 자리를 다시 손봐야 했다. 한 줄을 바꾸려고 한 시간을 쓰는 날도 있었고, 한 자리를 바꿨더니 다른 자리가 어긋나서 다시 손보는 날도 있었다. Claude Code 앞에서는 그 과정이 없었다. 한 문장으로 요청하면 한 문장만큼 바뀌어 있었다.


그날 워드프레스를 포기했다.

코칭을 하면서 만난 대표들 한 명 한 명에게 워드프레스로 만들자고 7년 전부터 권했었다. 워드프레스로 만들어야 콘텐츠가 살고, 그래야 SEO가 잡히고, 그래야 사이트가 자기 자산이 된다고 말해왔다. 그 말을 한 번이 아니라 수십 번 했다. 새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마다 첫 코칭에서 그 말을 꺼냈고, 워드프레스가 어렵게 느껴진다는 대표들에게도 그 길이 결국 맞다고 설득해왔다.

이제 더 이상 “워드프레스로 만드세요”라고 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내가 나를 부정하게 된 거였다.

7년을 두고 해온 말을 거두는 일이었는데, 막상 거두고 나니 부담보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설렘이 생겼다. 무거웠던 건 거두기 전, 러버블 화면 앞에서 당황하던 그 며칠이었다. 페이지가 짜여 나오는 화면 앞에서, 내가 그동안 한 말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자리가 무거웠다. 한 번 거두고 나니까 그 뒤는 가벼웠다.

지금도 가끔 그 생각을 한다. 지금이라도 워드프레스가 최고라고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만약 내가 7년이 8년이 되고 10년이 되도록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면, 그 시간 동안 코칭한 대표들의 시간과 노력은 낭비되었을거다. 워드프레스 설치부터 시작해서 테마 고르고 플러그인 붙이고 그 안에서 막히는 자리들을 풀어가는 데 들어가는 시간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큰 시간이다. 7년 전의 워드프레스 추천이 잘못된 추천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때는 그게 손에 잡히는 도구였고, 콘텐츠를 쌓을 수 있는 자리였고, 클라이언트가 자기 사이트의 주인이 되는 길이었다. 그때의 추천도 진짜였다. 다만 지금은 다른 환경에 놓여졌을 뿐이다.

익숙한 것을 놓는 일은 설렘이었다. 7년을 강조해온 말을 거두는 일이 무겁지 않았던 건, 거두는 자리에서 다른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머무르고 싶은 마음과 옮기는 즐거움 사이에서, 나는 후자를 골랐다. 변화하지 않으려는 나를 경계한다.

봄에 새싹이 돋고, 그 자리에 꽃이 피고,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고, 가을이 오면 단풍이 든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양으로 멈춰 있는 건 하나도 없다.


다시 코칭 자리로 돌아온다. 1년차 클라이언트가 Claude Code 화면을 보며 “API 연결하면 웹사이트 자체에서도 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던 그 자리. “옛날 방식이죠”라고 받았던 그 한마디는, 3개월 전에 내가 나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나는 새로운 것을 선택하는 과정을 계속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