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한 대표와 무거운 작업을 시작했다. 직원들이 잇따라 그만두면서 고민이 깊던 분이었다. 사람이 빠진 틈을 시스템으로 메워보자고, OS를 만들어 일의 일부를 자동화하기를 권했다. 대표가 받아들였고, 우리는 그 틀을 잡는 일부터 시작했다. 화면을 공유하고 한 덩어리씩 짜 나갔다. 가볍지 않은 작업이었다.

작업 중에 화면에 오류가 떴다

그 작업을 Fable 5로 하고 있었다. 나온 지 나흘 된 버전이다. 두어 달 전부터 이름이 오르내리던 모델이라, 열리자마자 쓰기 시작했다. 앞선 이틀은 밀려 있던 글쓰기와 캐러셀 디자인을 종일 이걸로 끝냈다. 단순한 일이었다. 이렇게 단순한 작업에 쓰라고 나온 버전은 아니었겠지만, 복잡한 무언가보다 당장 마무리하고 싶은 게 더 급했다.

오늘은 달랐다. 정액 요금제로 22일까지 쓸 수 있다기에, 다른 일을 다 미뤄두고 이 OS에 붙었다. 앞 버전인 Opus보다 더 체계적이고, 한 단계씩 짚어가는 결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틀이 어느 정도 잡혀갈 무렵, 화면에 오류가 떴다. 다시 눌러도 마찬가지였다. 더는 진행되지 않았다. 한창 손이 붙은 차라 실망스러웠다.

찾아보니 외국인은 쓸 수 없게 됐다

무슨 일인지 찾아봤다. 미국 정부가 이 모델을 막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때는 전면 금지인 줄 알았다. 좀 더 알고 싶어 기사를 더 뒤졌다. 외국인의 접근을 막은 지시였고, 그래서 미국 안팎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용자에게서 멈춘 것이었다. 어제까지 종일 쓰던 도구가, 오늘 내 손에서 사라졌다.

끊기고 나서야 보인 것

멈추고 나서야 보였다. 이 도구가 내 일의 어디까지 들어와 있었는지. 어제는 글과 디자인을 끝냈고, 오늘은 대표의 OS를 시작했다. 가벼운 일에도 무거운 일에도, 어느새 같은 도구에 기대고 있었다. 요금제가 22일까지라는 것까지 따져가며 작업 순서를 바꾼 것도 나였다. 끊겼을 때 이렇게 마음이 쓰인다는 건, 그만큼 이게 내 일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뜻이다.

다른 도구로 이어가는 중

멈춘 OS는 Opus 4.8로 옮겨 이어가고 있다. 며칠 손에 익힌 결이 아니라,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모른다.

대표는 사람이 빠져나간 틈에서 일을 다시 짜는 중이고, 나는 도구가 빠져나간 틈에서 그 작업을 다시 짜는 중이다. 둘 다 기대던 것이 갑자기 사라진 상황이 같다. 끊긴 틈에서 일을 어떻게 이어갈지,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지만, 작업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