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스무 살 남짓의 젊은 사람이 있다. 원래 마케터로 일했다. 그러다 개발 공부를 했다. 개발자가 되려 했다.

그런데 개발자를 뽑는 곳이 없었다. AI가 신입 개발자의 자리를 지웠기 때문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마케터로 입사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흔한 실패담이다. 그런데 끝나지 않았다.

이모지 하나로 광고 예산을 되살렸다

마케터로 일하면서 그는 AI로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었다. 개발을 공부한 사람이라, AI를 데리고 실무를 자동화하는 그림을 그릴 줄 알았다. 개발자로는 취업하지 못했는데, 개발을 배운 것이 이번엔 그를 살렸다. AI 때문에 개발자로 취업하지 못했지만, AI 덕분에 개발 일을 하게 됐다. 개발만 하는 개발자보다 개발하는 마케터가 회사에서는 더 필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가 만든 게 대단한 건 아니다. 회사가 네이버 광고에 한 달 삼천쯤 쓴다. 파워링크는 예산이 떨어지면 알림이 온다. 알림을 받아도 계정마다 들어가 처리해야 하니 놓치기 쉽고, 그사이 광고가 노출될 기회가 사라진다. 그는 그 알림을 슬랙으로 오게 했다. 슬랙에 뜬 알림에 이모지 하나를 누르면 예산이 다시 집행된다. 그게 전부다.

회사는 그를 인정했다.

먼저 썼다는 건 먼저 헤맸다는 뜻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한 발’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가 특별히 똑똑해서가 아니다. 능력이 뛰어나서도 아니다. AI를 조금 더 빨리 썼다. 그 차이 하나였다. 이모지로 광고 예산을 되살리는 일은, 할 줄 아는 사람에겐 대단한 기술이 아니다. 다만 그는 그걸 남보다 먼저 했다. 그리고 먼저 했다는 것이, 그를 다른 층위로 옮겨놓았다.

2년 전부터 나도 AI로 일을 한다. 그런데 여전히 헤맨다. 됐다 싶으면 어긋나 있고, 고쳤다 싶으면 다른 데가 어긋났다. 뚝딱 되는 건 없었다.

먼저 썼다는 건 능숙하다는 뜻이 아니다. 남보다 먼저 헤맨다는 뜻이다. 그 20대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대단한 각오로 시작한 게 아니라, 남보다 조금 먼저 손을 대고 먼저 헤맸을 뿐이다. 헤매다 보니 남들이 아직 손대지 않은 곳에 먼저 가 있었다.

판이 흔들리고 있다. 좋은 대학, 좋은 성적, 영어. 오랫동안 가치를 인정받아온 것들이 뒤섞이고 있다. 리셋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오래 쌓아야 했던 것들이 한 발 앞선 사람 앞에서 힘을 잃는다. 어떤 자리는 사라지고, 어떤 자리는 새로 생긴다. 그가 배운 개발이 그랬다. 개발자의 자리를 지운 것도 AI였고, 그 자리를 대신할 새 자리를 연 것도 AI였다. 같은 것이 문을 닫고 문을 열었다.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지금 열려 있는 가능성을 알아차렸으면 좋겠다고. 이것저것 해봤으면 좋겠다고. 특히 AI로 하는 것들을. 잘하지 않아도 된다. 먼저 헤매는 사람에게 기회가 열린다.

대단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다. 먼저 손을 대는 것. 그 한 발이면 된다.